수십 년간 꿈꿔왔던 인공지능 기반의 획기적인 신약 개발 시대가 드디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특히 구글 딥마인드의 스핀오프 기업인 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듯 보인다. 2026년 현재, 이들은 막대한 투자 유치와 주요 제약사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AI 신약 설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소모픽 랩스는 딥마인드의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을 기반으로, 그동안 난공불락이라 여겨졌던 질병 표적들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 21억 달러(한화 약 2조 8천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노바티스, 일라이 릴리와 같은 거대 제약사들과 손잡은 것을 보면, 이들의 기술이 단순한 기대를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과연 이소모픽 랩스의 ‘이소모픽 약물 설계 엔진(IsoDDE)’은 무엇이며, 어떻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걸까? 그 혁신적인 비밀을 파헤쳐 보자.
AlphaFold를 넘어선 IsoDDE의 혁신
알파폴드2(AlphaFold2)와 알파폴드3(AlphaFold3)는 계산 생물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발전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4년 노벨 화학상까지 받은 알파폴드2는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문제를 거의 해결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에이드리안 스테큘라 이소모픽 랩스 머신러닝 그룹 리더의 말처럼, 단백질은 진공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백질은 핵산, 작은 분자 리간드, 이온, 그리고 다른 단백질과 같은 다양한 생체 분자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알파폴드3가 이러한 모든 상호작용을 단일 프레임워크 내에서 모델링하는 방식을 도입하긴 했으나, 여전히 '새로운 주머니'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듯하다. 훈련 세트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모델의 성능이 저하되는 현상이 관찰되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약 개발에서는 새로운 작용 메커니즘, 즉 이전에 관찰되지 않았던 단백질 주머니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핵심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IsoDDE가 빛을 발한다. IsoDDE는 단순히 구조를 예측하는 것을 넘어, 리간드가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하는지, 얼마나 단단히 결합하는지, 그리고 신체 내 다른 단백질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속성들을 예측하는 통합 계산 시스템이다.
이 엔진은 구조 예측, 주머니 식별, 그리고 결합 친화도 예측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능을 수행하며, 이는 신약 개발의 성공률을 혁신적으로 높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숨겨진 주머니’ 크립틱 포켓 발견의 미스터리
IsoDDE 기술 보고서에서 이소모픽 랩스는 '세레블론(cereblon)'이라는 단백질과 그 '크립틱 포켓(cryptic pocket)'을 예시로 들었다. 세레블론은 세포 내 단백질 분해 경로에서 가장 중요한 단백질 중 하나인데, 일부 약물은 세레블론을 이용해 질병 유발 단백질을 파괴하도록 세포에 지시하기도 한다.
크립틱 포켓이란 단백질 표면에 존재하는, 비활성 상태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숨겨진 주머니'를 의미한다. 마치 특정 열쇠로만 열리는 자물쇠처럼, 적절한 리간드가 결합해야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특성을 지닌다. 기존의 단백질 구조 예측으로는 찾아내기 매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이었던 셈이다.
2026년 1월, 저명한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세레블론 단백질 표면의 완전히 새로운 크립틱 포켓이 발견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소모픽 랩스는 이 최신 연구를 활용하여 IsoDDE의 능력을 검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IsoDDE는 단백질 서열만으로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 크립틱 포켓의 위치를 완벽하게 예측해냈다.
더 나아가, IsoDDE는 해당 리간드들이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하는지 정확하게 예측하며 네이처 논문에 제시된 결정 구조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이는 IsoDDE가 이전에 파악되지 않았던 새로운 약물 표적을 찾아내고, 이들이 약물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정확하게 모델링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AI, 난공불락의 질병 표적을 공략하다
대부분의 현재 약물은 단백질에 결합하는 작은 분자들이다. 하지만 IsoDDE는 이러한 작은 분자 약물 설계의 한계를 넘어, 항체, 분자 접착제(molecular glues), 펩타이드와 같은 다른 치료 양식에도 적용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인공지능이 더 많은 단백질 표적을 공략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스테큘라 그룹 리더는 "많은 질병에는 이미 알려진 관련 단백질이 있지만, 그 단백질이 쉽게 약물화될 수 있는 주머니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IsoDDE는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을 찾아내어, 과거에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질병 표적들을 치료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AI 신약 개발에 대한 과장된 기대도 없지 않다. 단순히 구조를 정확히 모델링할 수 있다고 해서 신약 개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IsoDDE와 같은 통합 시스템이 다양한 엔드포인트들을 함께 모델링함으로써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1: AlphaFold3도 대단했는데, IsoDDE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뭔가요?
A: AlphaFold3는 단백질과 다양한 생체 분자의 상호작용을 모델링하는 데 큰 진전을 보였지만, 훈련 세트와 멀리 떨어진 '새로운 주머니'를 예측하는 성능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신약 개발은 미지의 표적을 찾아야 할 때가 많으므로, IsoDDE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리간드 결합 방식, 결합 강도 등 약물 설계에 필요한 더 많은 속성을 예측하며 AlphaFold의 다음 단계를 제시하는 듯 보입니다.
Q2: '크립틱 포켓'이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왜 중요한가요?
A: 크립틱 포켓은 단백질이 약물과 결합하지 않은 비활성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다가, 특정 리간드가 결합해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숨겨진 주머니입니다. 이 주머니들은 기존 약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약물 표적이 될 수 있어, '난공불락'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Q3: IsoDDE가 어떤 질병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A: IsoDDE는 그동안 약물화하기 어려웠던 단백질 표적들을 공략 가능하게 함으로써, 암, 신경 퇴행성 질환, 자가면역 질환 등 다양한 미충족 의료 수요를 가진 질병 치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새로운 작용 메커니즘을 가진 약물 개발을 가능하게 할 테니 말입니다.
Q4: AI 신약 개발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무엇인가요?
A: 인공지능이 단백질 구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약 개발 문제가 전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흔한 오해인 듯합니다. 에이드리안 스테큘라 그룹 리더도 지적했듯이, 실제 약물이 되기까지는 단순히 구조를 아는 것 외에도 수많은 복합적인 상호작용과 속성을 모델링해야 하기에, IsoDDE와 같은 통합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며
이소모픽 랩스의 IsoDDE는 딥마인드의 뛰어난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을 계승하면서도, 신약 개발의 복잡한 현실에 최적화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숨겨진 약물 표적을 찾아내고, 분자 간의 미묘한 상호작용까지 예측하는 이들의 능력은 머지않아 수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막스 자더버그(Max Jaderberg) 이소모픽 랩스 사장의 TED AI 강연에서 언급되었듯이, AI 시스템이 가설을 생성하고, 실험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에이전트적 워크플로우'의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공지능이 선사할 신약 개발의 미래는 이제 막 시작된 듯하다. 이소모픽 랩스가 그려나갈 다음 혁신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